열 여섯명의 조교
2020년 5월 15일.
아주 오래전 내가 논산훈련소에 입소해 한참 신병훈련을
받고 있을 때 마침 국가의 중대사로 전국민 투표가 있었
다. 정부가 하고자 하는 일에 찬성이면 '가' 반대면 '부'에
붓대를 누르는 방식이었다. 투표소는 지금의 통상적인
투표형태와 같았다. 기표소 앞에 줄을 섰다가 한 명씩 들
어가 기표를 하는데, 내 순서가 와서 커튼을 젖히고 안으
로 들어섰다가 나는 기겁을 하고말았다. 기표대 앞에 중
대 선임하사가 나를 마주보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손가락을 투표지의 '가' 쪽에 올려놓고 그곳에 붓대를 누
르라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나는 순간 마음 속에 화
가 치밀었다. "이런 개새끼"- 속으로 이러면서 나는 '부'
에 강하게 붓대를 눌러 찍고 돌아서 나왔다.
그날밤-
신병들이 모두 취침에 드는 시각에 조교들이 나를 불러
자기들 방으로 데리고 갔다. (온돌식) 방 안에는 10명
넘는 조교들이 4면 벽에 삥 둘러 앉아 있었다. 난 그 순
간 '아차! 이거 크게 질못되겠구나'생각에 겁이 덜컥 났
다. 그러나 다시 생각했다. "절대로 겁먹은 표정을 짓
지 말아야 한다." 그러고 있는데, 한 조교가 위협을 하
기시작했다. "난 빨갱이가 싫어!" 이어서 다른 조교들이
달려들려고 다가오는데, 나는 눈을 감고 그들의 발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곰곰 생각했다.
그 순간 방문이 열리더니 소대장 한 명이 방안으로 들어
왔다. 그 분의 이름을 잊어버려서 지금까지 내내 마음이
아픈데, 그 분은 ROTC 장교로, 조선대학교 출신이라고
했다. 그분이 말했다. "다들 멈춰라. 그리고 신병도 내무
반으로 돌아가라."
내가 '부'에 투표를 했다해서 빨갱이로 몰려 자칫 목숨을
잃을뻔한 경험이 어제 새삼스럽게 기억된 것은 열 여섯
명의 민주당 의원/당선자들이 "정의원과 윤미향의 범죄
를 들추는 사람들은 친일파, 반 인권 반 평화세력이다."
고 개짖는 소리를 듣고서였다. 그들은 마치 논산훈련소
조교처럼 주욱 늘어서서 "우리는 친일파가 싫어"라고 개
짖는 소리를 읊었다. 조교같고 조폭같은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어디 그날의 소대장같은 사람은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