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설 속의 5월 어느 날
내 소설 속의 5월 어느 날
“앨버트 씨, 술도 깰 겸 정원에서 바람을 쐬도록 하세요.”
스텔라의 노래 장면이 끝나자 로베르토가 말했다.
“스텔라야, 네가 정원으로 안내를 해라.”
“네, 아빠.”
스텔라가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를 차고 일어나 앨버트의 팔을 끌었다.
두 사람은 정원으로 나왔다. 초여름의 밤 기온은 정원에서 거닐기에는 아주 쾌적했다. 바람도 약한 미풍으로 피부에 온화하게 와 닿았다. 미풍을 타고 은은한 꽃 향기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다.
“향기가 아주 좋은데……. 이게 어디서 오는 향기이지……?”
주위를 둘러보며 앨버트가 말문을 열었다.
“야래향이예요. 주로 5월에 피는 꽃. 그리고 밤에 피는 꽃. 이 시간이 한창 꽃이 피는 시간이거든요.”
“야래향……?”
“네. 이 동네는 집집마다 이렇게 야래향 나무를 정원에 심는답니다.”
“아, 그래에…….”
다시 미풍이 불어 오고 그 미풍 속에 실려온 꽃 향기가 그들을 취하게 했다. 잠시 그 향기에 젖어 있던 스텔라가 조금 수줍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빠. 나 오늘 오빠를 만나게 돼서 정말 기뻐요."
"나도 그래. 아까 낮에 컨벤션센터에서 스텔라를 처음 봤는데, 정말 예쁘던데……. 인기도 대단한 것 같고…….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꿈만 같네."
출처: 인터넷 다음 블로그*
"정말이세요? 빈말이라도 좋아요.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네요."
스텔라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전 어제 아빠에게서 오빠 얘기를 듣고서 오늘 밤을 많이 기다렸어요."
"정말?"
아직 취기가 가시지 않아 불그레한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앨버트가 물었다.
"네. 정말로……. 미국에 유학하고 미 하원의 톰 들레이 의원 사무실에서 들레이 의원 보좌관으로 계시다가 우주그룹으로 스카웃 된 분이라고 해서……."
"로베르토 씨가 나에 대해 그렇게 말씀을 하셨단 말이지?"
"네. 유학은 워싱턴주립대이고, 전공은 국제정치학이고……."
"로베르토 씨가 어찌 그리 나에 대해 자세히 알고계시나……."
"아빠는 오빠가 서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시는걸요."
"그래에? 로베르토 씨가 나에 대해 그토록 자세히 알고 계실 줄은 몰랐는데……."
"우리 아빠는 비즈니스맨이잖아요. 비즈니스는 정보가 생명이고……. 게다가 우리 중화민국과 인연이 깊은 톰 들레이 의원의 보좌관인 오빠에 대해 관심이 없을 수 없지요."
"아, 그래에……."
"네……. 그런데 오빠는 처음에 우주그룹으로 스카웃됐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글쎄……. 처음에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좀 했었는데……. 내가 그리 잘 알지도 못하는 회사에서 날 필요로 한다고 하니……. 더구나 나는 미의회 국방위 소속으로 영향력이 매우 큰 들레이 의원의 힘을 빌어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재미있는 일을? 그게 뭔데요?"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앨버트를 향해 돌아서면서 두 눈에 호기심을 가득 담고 물었다.
"아무튼……. 그런데.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네……."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앨버트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중화민국과 연관이 깊은 톰 들레이 의원. 들레이 의원의 후원자 관계인 김충 회장. 그리고 그 의원의 에이스 보좌관 앨버트 최라……."
"보좌관이면 보좌관이지 에이스 보좌관은 또 뭐유?"
스텔라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푸흡!'하고 소리내어 웃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상담회장에서 로베르토 사장님이 주신 품목 리스트는 모두 무기 제조에 쓰일 부품들이었었네……."
"네. 그래요. 아빠 회사는 정밀 부품 제조회사거든요……. 그리고 아빠는 중화민국 정부의 방어용무기획득 수석자문위원이기도 해요."
"아, 그래에……."
"지금 중화민국 정부는 방어용 무기 확보가 매우 시급하거든요."
"아, 그래서……."
알겠다는 듯 앨버트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그건 로베르토 사장님의 일이고, 스텔라는 하는 노래에나 신경을 쓰시지……."
"넌 가수니까 노래에나 신경을 써라 이거지요?"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날카로와졌다. 이를 눈치챈 앨버트가 얼른 수습에 나섰다.
"자, 자, 우리 너무 심각한 얘기는 그만하고 다른 얘기를 좀 해보면 어떨가. 스텔라는 영어를 어디서 배웠길레 이렇게 잘하나…….”
"지금 진정으로 하시는 말이예요? 난 부끄러운데…….”
"아니야, 정말 잘 해. 얼굴 예쁘지 노래 잘하지 또 영어도 잘하지 거기에다 '오빠'라는 한국말 까지……. 난 오늘 너무 많이 놀라서 이따 호텔에 가면 잠이나 제대로 자게 될지 몰라."
"오빠 농담 되게 잘하신다."
스텔라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리며 앨버트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잠시 후 웃음을 멈추면서 그녀가 물었다.
“오빠, 내일은 뭐해요?”
“음, 아침에 로베르토앤컴퍼니 본사 사무실에 들러서 서류 하나 받고 타이중 공장 방문을 한 후에 오후 늦게는 타이베이 시내에서 모레 서울로 가는 표를 사려고 하는데, 왜?”
“그러면, 그 후에 잠깐 시간을좀 내주실 수 있으신가요?”
"왜?"
"아니 그저 어디 좀 잠깐 함께 가주셨으면 하는 곳이 있어서요."
“거기가 어딘데?”
앨버트가 자못 궁금한 얼굴로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지금 알려드리면 혹시 안가신다고 할까봐 그냥 비밀로 할게요.”
앨버트의 강렬한 시선을 자신의 까만 두 눈으로 맞받으며 스텔라가 대답했다.
“만나는 장소는?”
“일이 끝나면 제게 전화를 주시겠어요? 모시러 갈 테니…….”
“알았어요. 그렇게 할께. 그 대신 나 납치하면 안 돼. 알았지? 나도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그분들이 누군데요?”
“누구긴 누구야. 엄마, 아빠지.”
“피…….”
그녀가 어깨를 툭 쳤다. 그러고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디선가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풀벌레 소리에 젖어 있던 앨버트가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스텔라. 나 작은 청을 하나 해도 돼?"
"청이요?"
청이라면…… 무얼까. 스텔라가 긴장했다. 그래서 기대를 가득 담고서 앨버트의 입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나 지금 스텔라의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 하나 들을 수 있을까?"
'노래라고…….'
노래이야기는 그녀를 실망시켰다. 이 달콤한 분위기 속에 기대하던 답변이 겨우 '노래 한 곡'이라니……. 그래서 스텔라는 꼬여진 말투로 답을 달았다.
"이 분위기에 내 노래가 도움이 되려나……."
그리고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스텔라가 노래 하나 해주면 이 황홀한 밤이 내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밤이 될거 같아."
정말이세요?
순간적으로 그녀가 내리깔았던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새까만 눈동자가 반짝!하고 빛났다.
"좋아요 오빠. 내 그리할게요."
조금 부드러워진 음성으로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리고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앨버트는 그녀의 목소리에 잔뜩 기대를 하고 발소리까지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그녀의 노래가 조용한, 그러나 달콤한 음성으로 시작이 됐다.
밤바람이
내 마음을 흔드네
소쩍새 소리 애잔하게
나의 고독을 일깨우네
이 밤
달빛 아래 모든 꽃
곤히 잠드는데
야래향만이
꽃향기를 뿜고 있네
난
이 고독한 밤도
소쩍새 소리도
좋아하지만
꿈꾸듯
밤안개 속에서
너를 듬뿍 안고서
너에게 입 맞추고
너의 향기를 느끼는 게
더 좋은걸
야래향
내 널 위해
노래할 거야
야래향
너를 늘
그리워할 거야
널 위해 노래하고
너를 늘 그리워할 거야
야래향
야래향
아아 야래향
"아, 역시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네. 노래가사도 이 분위기에 딱 맞고……."
"고마워요 오빠. 잘 들어줘서, 그리고 칭찬해줘서."
"고맙긴, 내가 더 고맙지. 그런데, 내 생각엔 이 노래는 남자가 불러야 하는 노래 같은데?”
"가사 내용을 알아듣겠어요?"
"그 동안 내가 열심히 중국어 공부를 좀 한 덕분에 좀 알아들었거든."
“그래요? 그런데, 여자만 꼭 꽃이 되라는 법이 있나요?”
“아니, 그건 아니겠지만, 난 내가 그 노래를 스텔라에게 불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
"아, 그래요? 그럼, 오빠가 날 위해 이 노래 불러주면 안돼요?"
"글쎄……."
"아, 오빠! 오빠가 날 위해 이 노래 좀 불러줘요. 네?"
그녀가 발을 구르면서 앨버트의 팔을 흔들었다.
"그래. 내 한번 노력해 볼게. 열심히 연습해서 언제든 기회가 생기면 내가 이 노랠 반드시 스텔라 앞에서 불러줄게."
약속해요!
그녀가 손을 내밀어 앨버트의 손가락에 깍지를 끼웠다. 아담하고 부드러운 손 나긋나긋한 여인의 손이 한 청년의 마음을 조용히 흔들기 시작했다.
정원 밖에서부터 살랑거리며 불어온 바람이 다정하게 걷고 있는 두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스쳐간 뒤, 갑자기 스텔라가 뭔가를 기억해낸 듯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면서 앨버트를 향해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 참, 오빠의 노래 솜씨를 검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하나 생각났다."
뭔데?
대답대신 표정으로 앨버트가 질문을 던졌다.
"나, 머지않아 한국에 갈 일이 있어서……."
“한국에? 무슨 일로?”
“우리 아빠가 우주조선에 발주한 컨테이너선 명명식에 참석하러요.”
“로베르토 씨가 운송업도 하시나?”
“아니. 발주는 아빠가 하셨지만 사용은 내가 할 거고, 나는 이 배를 우리의 목적을 위해 쓰게 될 거예요.”
“우리? 누군데?”
“내가 속한 단체죠. 그 단체 이름은 지금 말하기가 좀 어렵고…….”
“컨테이너선 이름은?”
“스텔라랍니다. 내 이름을 따서…….”
“스텔라라…… 아름다운 배 이름이네……."
“그렇게 생각해요?”
그녀가 정색을 하며 물었다.
“그러엄. 그 배도 아마 스텔라처럼 아름답게 만들어지고 있을거야. 틀림없이.”
스텔라의 얼굴에 홍조가 번졌다.
“그 때, 오빠도 와주세요. 와서 이 노래를 나한테 블러주세요. 네?"
“글쎄. 명명식도 보고싶기도 하고……. 스텔라호가 얼마나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 하지만 본사 사무실 업무가 어떻게 될지…… 옥포까지 출장 허가가 날는지도 모르겠고.”
“출장 허가야 나오게 하면 되지 뭐.”
"그 때가 언제인데?"
"아직 날짜는 확정되지 않았어요. 정해지는대로 오빠한테 편지를 쓸께요. 편지 받고 꼭 와야돼요. 네?""
“글쎄……. 아무튼 한번 노력해볼게.”
“꼭 왔으면 해요. 꼭요. 네?”
‘꼭’을 강조하면서 잡은 손에 꽉 힘을 주더니, 그녀는 나무에서 꽃 하나를 꺾어 자기 머리에 꽂았다. 바싹 붙어선 그녀의 귓볼 위에서 풍겨 나오는 꽃향기가 앨버트를 취하게 만들었다.
“이 꽃향기가 마음에 드세요?”
그녀가 머리를 앨버트의 얼굴에 바싹 갖다 대면서 싱긋 웃었다. 달빛에 그녀의 해맑은 눈동자가 반짝!하고 빛났다. 반짝이는 눈동자! 순간 앨버트는 자기도 모르게 그녀에게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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