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0일.
"나는 '사랑했지만' 이 곡을 내가 부르기는 했어도 처음에는 이 곡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남자가 누군가를 사랑
하면 가까이 다가가야지 왜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나요. 그건 아니지요. 그런데, 내가 이 곡에 애착을 가지게 된 계기는
어느 70대 할머니께서 비가 오는 어느날 길을 가다가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들으시고는 곡이 너무 좋아서
노래가 끝날 때까지 비를 맞으면서 그 자리에 서서 이 노래를 들으셨다는 얘기를 듣고나서였습니다."
이 말은 고(故) 김광석이 콘서트장에서 팬들에게 들려준 그의 음악에 관한 일화 한 토막이다.
70대 할머니까지 마음을 뒤흔든 '사랑했지만'은 그만큼 심금을 울리는 대중가요지만 정작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오래
팬들 곁에 있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타계는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슬픔과 의문을 증폭시켰다. 왜 그는 그토
록 일찍 생을 마감했나. 무슨 곡절이 있었길레 그렇게 일찍 갔나. 보통의 가수들이 겪는 가난때문이었나, 인기 직종에
대한 허탈감에서였나. 실상이 매우 궁금했었다. 특히 그와 함께 음악활동을 했던 팀원들이 유난히 굳게 입을 다물고 있
어서 더욱더 궁금증은 컸었다.
▲ 너무 무서워. 위드33뮤직 대표 서해순, 피살자의 유산으로 부를 누리나.
그러나 어제 오늘 그 의문이 풀렸다. 그는 자신의 아내와 처남에 의해 목졸려 죽었다는 것이다. 그와 그의 아내 (이름은
서해순)는 1990년에 결혼을 했는데 결혼 후에 서해순의 이혼경력의 과거가 드러나고 거기에 더하여 이혼 전에 9개월된
영아를 살해한 사실이 있음을 알게 돼 김광석은 더이상 결혼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때마침 그녀가
다른 남자와 불륜울 저지르게 되자 이를 기화로 이혼 협의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가 죽은 날인 1996년 1월 6일은 두 사
람이 최종적으로 이혼 담판을 벌이게 되는데 이 때 두 사람은 재산 문제로 언쟁이 심해지게 되고 그 순간 서해순이 전과
13범의 범죄 이력이 있는 자신의 오빠를 불러와 언쟁에 합세시켰다는 것이다. 그 직후 김광석은 숨진 상태로 119에 의
해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것이다. 당시 경찰이 그의 사인(死因)을 자살로 결론냈는데, 부검 당시 그의 목 뒤에 손으로 조
른 흔적이 있었음에도 이런 점이 간과된 것은 부실한 수사, 졸속 수사라고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그가 죽은 뒤 얼마 후에 그의 피상속인인 17세 딸도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딸이 가졌던 상속재산이 모두 피의자 서해순
에게 가게 되는 기이한 결과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살인자가 피해자의 저작권 등 거액의 유산을 손에 넣게 된 셈이다.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다.
지금 서해순의 잔인한 인간성, 오빠의 강력범 전과 등에 관한 내용은 이미 인터넷에 자세히 기록돼 전파되고 있다. 그리
고 이 모든 것을 자세히 파헤치고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이들을 반드시 처벌할 수 있게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기 위
해 나선 한 언론인의 활동도 지금 한창 진행중이다.
'이슈 & 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소다로, 난민을 사살하겠다고. (0) | 2017.09.25 |
---|---|
프랑스의 예의 없는 인간들 (0) | 2017.09.22 |
안드레이 란코프 - 국민대에서 김정은 찬양 강의하나 (0) | 2017.09.15 |
LA다저스가 디비전시리즈에서 애리조나디이아몬드벡스를 피하는 길 (0) | 2017.09.12 |
문재인 정부는 왜 헨리·키신저의 제안을 외면하나 (0) | 2017.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