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7일.
국회에서 세월호특별법이 통과되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205일만이다.
이제는 피해자 가족들이 어서 빨리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삶을 편안하게 살아가도록 했으면
한다.
소설
사이버 힐링
슬픔을 침묵으로 삼키는 일처럼 고통스런 행위는 없다. -뭉크
너른 들판 저쪽 끝 먼 곳에 두 개의 작은 점이 나타났다. 그 점은 차츰 형체를 갖추기 시작하더니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굴렁쇠를 굴리며 들판 위를 달리는 두 아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점점 커지는 그들의 모습은 재잘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내 쪽으로 다가오다가는 내가 손을 내밀어 반가이 맞으려 하자 그냥 슬그머니 지나가 버렸다. 그 후 그들의 모습은 길게 흘러내리는 시냇물 여기저기를 첨벙거리며 가재 찾아 돌 속 뒤지기, 누렇게 익은 벼이삭들 사이를 누비며 잽싼 손놀림으로 메뚜기 잡기, 그리고 한겨울 얼어붙은 강 위에서 썰매를 지치다 서로 뒤엉켜 눈밭 위로 나뒹굴기의 모습들로 빠른 속도로 바뀌면서 나의 눈앞을 스쳐갔다.
나는 침을 꿀꺽! 하고 삼켰다. 그리고는 두 손을 들어서 머리를 덮고 있는 헤드 캡을 만지작거렸다. ‘헤드 캡이 움직이지 않도록 잘 고정시켜주세요.’ 귓속으로 파고드는 경고음에 퍼뜩 정신을 가다듬고는 나는 얼른 머리에서 두 손을 뗐다.
"이규야, 이리 와 봐." 낯익은 음성이 나를 부른다. ‘강혁이, 한 강혁의 목소리 아냐?’ 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 등 뒤에는 강혁이가 조용히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우리 이것 구워 먹자." "고구마 아냐, 너 이것 어디서 훔쳤냐?" "훔치기는……." "그건 그렇고, 너 어디 갔다 왔냐. 네 집에서 얼마나 너를 찾고 다닌 지 아냐?" "알아. 나, 그 동안 새 터에 가서 그 왜 할머니만 혼자 사시는 집 있잖냐. 그 집에 가서 고구마를 캐는데 도와드리고 왔지. 이틀 동안……. 고구마 캐는 일 신나더라." "어린 네가 그 할머니에게 무슨 도움이 됐겠냐? 괜히 일만 방해하고 왔겠지 뭘." "아니다. 내가 할머니보다 훨씬 많이 캤다 너." 이 고구마는 할머니가 고맙다고 싸주신 거야. 그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잽싼 손놀림으로 주변에서 잔돌을 주워 모은 뒤 덤불과 잔 나무 가지에 불을 지폈다. 그와 함께 구워 먹던 고구마 맛은 인상적이었다. 갓 캐낸 신선한 고구마를 군불 위에 적당하게 구워내는 강혁이의 솜씨는 알아줄만 하다고 생각했다. 군고구마를 실컷 먹고 나서 배가 빵빵해지자 난 장난기가 발동했다. 고구마 껍질에 묻어 있는 검댕이를 손바닥 가득히 모아가지고 강혁이의 얼굴에 냅다 발라댔다. 순식간에 당한 강혁이는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어어……, 너 이리와!" 돌 위에 묻어 있는 검댕이를 전부 모아가지고 나를 향해 돌진 했다. "나 잡아봐라!" 난 미리 도망갈 준비를 해 논 터라 잽싸게 자리를 박차고 달아났다. 강혁이가 경주를 하듯이 빠른 속도로 뒤쫓아 왔다. 우리는 들판을 가로 질러 그 끝자락까지 달렸다. 그 곳에는 조금 비탈진 언덕 위에 우람한 느티나무가 동네를 내려다보며 근엄한 자태를 하고 서있다. 우리는 숨을 할딱거리며 그 곳까지 달렸다. 그리고 그 곳에 이르러서는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잽싸게 나무 기둥 위에 탁! 탁! 손가락 터치를 하고 나서는, 하쿠나마타타 하고 내가 주문을 반복해서 중얼거리며 나무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며 절을 할 때, 비비디바비디부 하고 강혁이도 옆에 서서 나무를 향해 주문을 외웠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서로 마주 보는 자세로 돌아서서는, 하쿠나마타타 비비디바비디부 하고 동시에 주문을 외우면서 서로의 오른 손 바닥끼리 공중에서 마주친 후 또 같은 주문을 외우면서 이번에는 서로의 왼손 바닥을 마주치는 동작으로 점점 빠르게 수차례 반복한 후 맨 나중에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나무 아래로 뒹굴었다. 그리고는 검댕이에 시꺼메진 서로의 얼굴을 가리키며 자지러지게 웃었다.
너무 강혁이에게 몰입을 한 탓일까. 나의 머리에 쓴 헤드 캡이 헐거워지면서 눈앞에 전개되던 버추얼 영상이 돌연 중단되고 경고음이 울렸다. 나는 자세를 가다듬고 헤드 캡을 머리에 밀착시켰다. 곧이어 멈췄던 장면이 그대로 이어졌다.
이른 아침 마을 어귀에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사람들 사이로 도랑에 빠진 경운기가 보인다. 경운기 주위로 끈을 매달고 있는 노인들이 보이고 책가방 던져놓고 경운기에 달려든 강혁이의 모습도 보인다. 잠시 후에는 마을회관 앞에 검은 세단이 서 있고 차에서 나온 젊은 친구 앞에서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동네 노인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조금 있으니 푸른 들녘 한 쪽에 검은 연기를 내뿜는 공장들의 모습도 나타났다 사라지고, 공장 뒤 산 위의 아름드리나무들이 잘려 나가고 그 자리에 골프장이 들어서고 있는 모습도 나타났다 사라진다. 골프장에는 강혁이가 사나운 개들과 오리들을 풀어서 골퍼들을 혼비백산 시키는 장면도 나타나고, 그 일로 조폭들이 동네에 나타나 농기구며 곡식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던지고 몽둥이로 가축들을 마구 두들겨 패는 장면도 나타났다 사라진다.
골프장의 개와 오리 문제로 강혁이는 학교로부터 정학 처분을 받고 교실복도에서 닷새 동안 무릎 꿇고 앉아 있어야 했다. 나는 이러한 강혁이를 위로하기 위해 우유와 빵을 사들고 개울가로 그를 불러냈을 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흐르는 개울물만 바라봤다. 풀잎을 하나씩 둘씩 개울에 던지고 있던 그가 불쑥 나에게 물었다. "이규야, 너 우리 동네에 대해 걱정해봤냐? 나는 늘 걱정을 한다." "또 그 이야기냐?" "응." "그런 거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냐. 난 당장 내일의 시험 준비에도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그러지 말고 심각하게 생각해야 된다.“ "그럴 시간이 없다니까……." 어린애든 어른이든 마을에 대해 걱정을 해야 할 상황에 있었던 우리 마을, 기르던 돼지와 닭들이 자주 죽어나가고, 검은 연기 때문에 목이 아파 결석을 자주 하게 되고, 툭하면 깡패들이 동네에 몰려와서 마구 때리고 깨부수고 집어던지는 바람에 동네 사람들은 어른 어린애 할 것 없이 두려움에 떨고 있던 때였다. 강혁이는 누구보다 걱정을 많이 했다.
‘헤드 캡을 다시 고쳐 쓰세요.’ 잠시 강혁이의 근심하는 모습에 몰입해 있었나 보다. 버추얼 영상이 다시 중단되고 경고음이 울렸다. 나는 얼른 자세를 가다듬고는 헤드 캡을 머리에 밀착시켰다. 곧이어 멈췄던 장면이 그대로 이어졌다.
낯익은 교정. 강혁이가 옆에 있기에 나는 마냥 행복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교정이다. 새 교복으로 단장한 신입생들, 운동 경기, 문화 축제, 긴장되는 시험 시간들, 그리고 부지런한 교사들의 모습이 빠르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물처럼 흘러가는 세월 속에 모두 들 대학 진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던 어느 날, 개울가에 앉아 풀잎을 하나 둘 물 위로 던지던 강혁이가 조용히 내게 말했다. "이규야, 나 선생님이 되고 싶다." "교육자가 되겠다고?" "응." "그래. 넌 교육자가 되고도 남을 인물이야. 너 같은 사람이 교육자가 돼야 해." "고맙다. 이규야." "고맙긴……. 넌 잘해낼 거야. 훌륭한 교육자가 될 거야. 교육자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봐." "그래……." 그의 눈이 반짝였다. 나는 그토록 밝게 반짝이는 눈동자를 본적이 없었다. "난 아이들의 힘을 빌려, 아이들과 힘을 합쳐서 새로운 세상 만들기에 진력할 거야.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신세대 아이들은 옛 낡은 사상을 좋아하지 않을 거야. 난 이런 신세대 아이들을 잘 교육해서 반드시 맑고 깨끗한 세상을 만드는데 중심적 역할을 할 거야. 지금처럼 추악하고 부패한 관료들, 협잡꾼 정치인들 그리고 탐욕스런 재벌들이 차츰 물갈이 되면서 깨끗하고 밝은 신세대로 그 자리를 채울 수 있게 교육자의 위치에서 지도하고 리드할 거야." "그래. 반드시 그렇게 하기를 빈다." 나는 진심어린 표정으로 그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자세를 바르게 해주세요.’ 내가 또 자세를 무너뜨린 모양이다. 내 눈앞에 전개되던 버추얼 영상이 또다시 중단되고 경고음이 울렸다. 나는 얼른 자세를 가다듬고 헤드 캡을 머리에 밀착시켰다. 곧이어 멈췄던 장면이 그대로 이어졌다.
웅장한 건물들. 드넓은 교정. 책가방을 맨 젊은이들. 그 속에서 강혁이의 모습이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빠른 움직임 속에 세월은 흘러가고 강혁이의 모습도 차츰 촌티를 벗고 의젓한 도시의 젊은이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강산고등학교에 채용이 돼 교사로서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우리 모두 강혁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며 건배!" "건배!" "건배!" "고맙다. 얘들아. 난 아이들의 힘을 빌려, 아이들과 힘을 합쳐서 새로운 세상 만들기에 진력할 거야.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신세대 아이들은 옛 낡은 사상을 좋아하지 않을 거야. 난 이런 신세대 아이들을 잘 교육해서 반드시 맑고 깨끗한 세상을 만드는데 중심적 역할을 할 거야. 지금처럼 추악하고 부패한 관료들, 협잡꾼 정치인들 그리고 탐욕스런 재벌들이 차츰 물갈이 되면서 깨끗하고 밝은 신세대로 그 자리를 채울 수 있게 교육자의 위치에서 지도하고 리드할 거야." "그래. 우리 모두는 네가 반드시 그렇게 하기를 빌겠다." 모두가 그에게 진심어린 응원을 보냈다.
‘헤드 캡을 고쳐 쓰세요.’ 내 응원이 너무 요란했나. 버추얼 영상이 중단되고 경고음이 ‘티익! 티익!’하고 울렸다. 나는 얼른 자세를 가다듬고 헤드 캡을 고쳐 썼다. 곧이어 멈췄던 장면이 그대로 이어졌다.
강산고등학교 교정이 좀 시끌벅적하다. 사람들이 빙 둘러싼 중앙에 탈을 쓴 양반과 민초들이 덩실 덩실 춤을 추고 있다. 강혁이가 지도하는 봉산탈춤 공연 장면이다. 버추얼 화면이 공연 모습을 클로즈업 했다. 말뚝이 : 쉬이. 양반 나오신다아! 양반이라고 하니까 노론(老論), 소론(少論), 호조(戶曹), 병조(兵曹), 옥당(玉堂)을 다 지내고 삼정승(三政丞), 육판서(六判書)를 다 지낸 퇴로재상(退老宰相)으로 계신 양반 인 줄 아지 마시오, 개잘량이라는 '양'자 에 개다리 소반이라는 '반'자 쓰는 양반이 나오신단 말이오. 양반들 : 야아, 이놈, 뭐야아? 말뚝이 : 쉬이. 여보, 구경하시는 양반들, 말씀 좀 들어 보시오. 짤따란 곰방대로 잡숫지 말고 연죽전 (煙竹廛)으로 가서 돈이 없으면 내게 기별이래 도 해서 양칠간죽(洋漆竿竹), 자문죽(自紋竹)을 한 발 가옷씩 되는 것을 사다가 육모깍지 희자 죽(喜子竹) 오동수복(梧桐壽福) 연변죽을 사다가 이리저리 맞추어 가지고 저 재령(載寧) 나무리 거이 낚시 걸 듯 죽 걸어 놓고 잡수시오. 양반들 : 뭐야아?
양반전 탈춤 공연이 지나가고 강혁이의 주위에 제자들이 빙 둘러싸고 재잘거리고 있다. 스쳐가는 장면 사이로 들려오는 재잘거림에 수학여행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규야. 나 며칠 동안 널 못 보게 될 거야." "무슨 일이 있냐?" "응, 우리 학년 전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거든." "아, 그래? 비행기로 가나?" "아니, 배를 타고 가." "그래? 인원수가 꽤 많을 텐데, 인솔하느라 신경 좀 쓰이겠다." "나 혼자 인솔하는 건 아닌데……. 하지만 신참이라 내가 제일 신경 쓰인다." "그래. 조심해서 다녀 와." "그래 갔다 와서 보자."
그는 신경이 쓰인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수학여행을 떠났다. 나는 이 모습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가 출발한 날 아침, 불길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오빠! 큰일이 났어! 강혁이 오빠가 지금 사고를 당한 것 같아." "뭐야. 사고라고?" "오빠가 탄 배가 침몰된 거 같아." "그래서? 강혁이는 어떻게 됐냐?" "아직 모르겠어요." "몰라? 안되겠다. 내가 강혁이에게 전화를 해봐야지." 나는 황망히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여. 여보세요. 강혁아. 강혁……아. 전화는 신호음만 계속 울릴 뿐 상대방이 받는 기색은 없었다. 잠시 후.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삐 소리가 울린 후…….' 순간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내 귀를 지잉! 울렸다. 눈앞이 하얘지고 머릿속이 휑! 비어지는 것 같았다. 목안에 갈증이 심해져 책상 위의 물 컵을 찾았다. 그러나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눈앞에 놓인 물 컵도 제대로 잡지 못해 책상 밑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강혁아! 강혁아! 나는 그저 핸드폰 마이크에 입을 대고서 목이 터져라 계속해서 강혁이의 이름만 불러대고 있었다.
그 시각에 강혁이는 제자들의 구조를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너희들 침착하게 여기 내 어깨 위로 올라가 저 창을 빠져 나가라." "선생님도 함께 나가요!" "내 걱정은 말고, 어서 어서 빠져 나가라. 물이 차오고 있다." "선생님, 제 손을 잡으세요. 나오세요." "넌 어서 나가고. 다음 차례. 내 어깨 위로 올라서라. 그리고 창으로 빠져 나가라. 물이 차오르는구나." "…… 다음 차례." …….
"아직 한 강혁 선생의 시신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런 재변이 또 어디에 있나. 사고가 난지 반년이 지나도록 시신조차 찾지 못하다니……. 이 나라 정부는 도대체 무얼 하는 정부인가. 깊지도 않은 바다에서 수백 명의 인명을 바다에 수장하고, 심지어 수장된 시신도 몇 개월째 건져내지 못하다니……. 이런 인간들이 무슨 낯으로 국민의 세금을 먹어가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냐." 강혁의 부모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그리고는 소리치다 소리치다 견디지 못하고 혼절했다. 혼절에서 깨어나면 다시 바닷가로 달려가서 목청껏 강혁이를 불렀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사고 이후 단 하루도 내 정신으로 살아가는 날이 없었다. 강혁아, 강혁아. 이놈아, 대답 좀 해라, 제발, 제발…….
‘잠시 후 스캔이 완료될 것입니다. 스캔이 완료되면 곧이어 우리 클리닉이 적절한 진단과 처방을 내리도록 할 것입니다. 진단과 처방을 위해 국내외에서 의사와 전문가들이 상시 대기하고 있습니다.’
배 속에는 물이 가득 찼고, 제자들과 함께 물속을 허우적거리던 강혁이는 어디론지 사라졌다. ……. 나는 더 이상 바라다 볼 기운이 없어졌다. 목이 막혀 오고 시야가 흐려졌다. 도저히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이규님의 멘털트러블 체크를 위한 스캔 절차가 끝이 났습니다.’ 멀리서 가물가물 모기 소리가 나의 귓전을 맴돌았다. ‘이제 스캔 결과를 가지고 멘털트러블 전문가와 의사들이 각기 의견을 제시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처방을 선택하여 이를 이규님에게 제공해 드리도록 할 것입니다.’
안녕 하세요 저는 정신과 전문의 정 신치 박사라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이규님의 사연을 원격 화면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이규님은 지금 사랑하는 친구를 떠나보내고 허무함과 그리움 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증상을 전문 용어로 표현하면 '뉴런인자의 부조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멘털트러블은 뇌 속 뉴런인자의 조화 여부와 직접적 연관이 있으며, 이 뉴런인자의 조화가 깨지는 순간 인간의 정상적 정신활동은 위태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트러블을 치유하는 방법으로는 뇌파조절법, 심리치유법, 약물 투여법 등이 있으나, 이 중에서 오늘 이규님에게 권유 하고 싶은 것은 심리치유법, 그 가운데 오픈샤우트법입니다. 이것은 쉽게 말해 '목청껏 소리 내어 외치기'입니다. 실컷 소리를 질러 마음의 욕구를 발산하면 꽉 막혔던 불만 또는 깊은 슬픔이 상당기간 가시게 될 것입니다. 아무데서나 소리를 질러도 좋겠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 감을 줄 수 있으므로 이곳 사이버 힐링 클리닉을 이용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래. 나는 강혁이의 이름을 실컷 부르고 싶어. 그리고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그의 목소리를 귀로는 못 듣더라도 마음으로는 들을 수 있겠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난 견딜 수 없어.
나는 서둘러 크라잉캡슐로 들어갔다. 캡슐 안에는 점점 차오르는 바닷물 소리가 찰싹거리고 있다. 나는 차라리 이곳이 그가 잠든 바다 속이라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간을 잡고 서서 나는 소리쳤다. "강혁아. 보고 싶다." "강혁아, 나는 가슴이 아프다." 찰싹거리는 소리가 내 가슴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강혁아, 나는 너와 굴렁쇠를 굴리던 어린 날을 생각하면 얼마나 즐거운 생각이 드는지 모른다. 너른 벌판을 너와 웃고 떠들며 종횡으로 누빌 때 난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너의 옆에서 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행복했었다." 나는 소리 쳤다. 마치 저 건너편에 강혁이가 듣고 있는 것처럼 하고. “그리고 흐르는 시냇물 여기저기를 첨벙거리며 너와 함께 가재 찾아 물속을 뒤지던 때가 너무 그립다. 너의 옆에서 첨벙거리는 소리를 내며 냇물 속을 뛰어다닐 때가 너무 그립다. 너 아니? 난 너와 함께 누렇게 익은 벼 이삭들 사이를 누비며 메뚜기 사냥에 나섰을 때가 너무 행복했었다. 넌 언제나 나보다 배는 빠르게 메뚜기를 가방에 가득 채웠지. 난 너의 옆에서 함께 벼이삭들 사이를 누빌 때가 제일 행복했었다." 나의 목은 점점 잠기고, 숨소리 또한 거칠어졌다. “그리고…… 한겨울 너와 함께 얼어붙은 강 위에서 썰매를 지치다 너와 뒤엉켜 눈밭 위로 나뒹굴던 때가 너무 그립다. 조금 있으면 겨울이 오는데, 이 겨울을 나는 네 생각 때문에 어떻게 보내야 할지 두려움이 앞선다." 순간, 겨울바람처럼 찬 바닷바람이 내 앞으로 엄습해 왔다. 나는 차라리 이 바람 속에 그대로 실려 들어가 강혁이와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강혁아, 나는 정말 속이 아프다. 나는 네가 구어 준 고구마를 함께 먹을 때가 정말 잊히지 않는다. 네가 학교를 결석하고 혼자 사는 할머니를 도와주러 간 것을 알고 나서 너무 네가 우러러보였었다. 너 그거 알지? 네가 동네에 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항상 앞장서서 도와주려고 나섰을 때 정말 존경스러웠다." 나의 목소리는 눈물과 함께 젖어갔다. “강혁아, 사랑한다! 산의 나무를 다 베어내고 골프장을 만든 악덕 업자에게 사나운 개하고 오리를 풀어 혼내주었을 때 얼마나 네가 우러러보였는지 아나? 사랑한다. 강혁아. 그 일로 네가 정학을 당해 교실 복도에 무릎 꿇고 앉아 있었을 때 내가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알지? 강혁아, 나는 정말 마음이 고통스럽다. ……" 나의 목소리는 더욱 격해졌다. 소리를 맘껏 지르고 나면 곧바로 가슴이 좀 후련해질 것 같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강혁아, 새로운 세상을 꿈꾼 너의 성공을 볼 수 없게 되었으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 난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쳐 너의 그 꿈 실현을 위해 돕겠다고 마음속으로 수백 번 다짐했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다니……." 가슴을 저미는 듯 한 통증이 몰려왔다. “강혁아, 나는 정말 속이 쓰리다. 네가 교육자가 돼서 아이들의 힘을 빌어, 아이들과 힘을 합쳐서 새로운 세상 만들겠다던 너의 높은 뜻, 신세대 아이들을 잘 교육해서 반드시 맑고 깨끗한 세상을 만드는데 중심적 역할을 할 거라던 너의 간절한 소망, 지금처럼 추악하고 부패한 관료들, 협잡꾼 정치인들 그리고 탐욕스런 재벌들이 차츰 물갈이 되면서 깨끗하고 밝은 신세대로 그 자리를 채울 수 있게 교육자의 위치에서 지도하고 리드할 거라던 너의 야망이 무너진 것을 생각하면 정말 하늘이 무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순간적으로 나는 하늘을 원망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강혁아, 왜 그 곳에 갔니? 왜 거기서 나오지 못하니? 강혁아, 네가 보고 싶다. 강혁아!" 강혁아! 아! 강혁아! …….
‘캡슐의 제한시간이 완료됐습니다. 잠시 후 조명이 멈추고 캡슐이 닫힐 것입니다. 준비해주십시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캡슐 안의 조명이 깜박거리며 자리를 떠나라고 메시지를 날리고 있었다. 나는 힘없는 발걸음을 돌렸다. 답답했던 가슴이 약간 풀리는 듯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는 갔다. 나의 애타는 부름에도 불구하고 그는 허무하게 내 곁을 떠나갔다. 그런 그를 나는 너무도 무기력하게 그냥 멍청하게 보고만 있다. 내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데 사용되는 첨단 기술들은 왜 내 친구의 죽음을 막는 데는 가치를 발휘하지 못했을까. 생사의 재난을 막지 못하는 기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깊이 18미터의 바다도 마음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우리가 어찌 큰 소리를 칠 수 있을까. 아까운 사람들을 허무하게 수장해버리고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아무리 잘 치유해 준다 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가.
오늘 나의 고통은 완전하게 치유되지 못했다. 비록 잠시나마 내 친구의 얼굴과 목소리를 들을 수는 있었다 해도, 그리고 목 놓아 그의 이름을 불러보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모두 치유될 리는 없는 일이다.
언제 나의 이 고통은 완전히 치유될까. 나는 묻고 또 묻는다. 나의 이러한 물음은 계속될 것이다. 내 마음속에서 나의 우상, 나의 진정한 친구 한 강혁의 흔적이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그 때가 언제일까.
2014년 11월 7일 노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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