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반은 그대에게
조셉 갠트
1946년 어느 날.
텍사스 발 LA행 기차 안에서 25세의 아리따운 처녀 클라라는 미육군 제복을 입은 새파란 청년과 첫 만남을 갖
게 된다. 조셉 갠트라는 이름의 이 청년은 클라라에 첫눈에 반했고, 그 후 2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에게 구애를
하게 된다.
당시 갠트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남태평양 전선에서 훈장을 탄 모범군인이었다. 그는 군인답게 용기를 내
서 그녀를 설득했고, 2년여 동안 망설이던 그녀도 결국 줄기찬 이 청년의 구애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당시 갠
트의 나이는 23세. 그의 계급은 하사였다.
그들이 꿈같은 신혼 생활을 보내던 중 갠트는 미 2보병사단 503포병부대에 지원했다. 이 부대는 1950년 한국
전쟁에 파견되게 돼 갠트도 전쟁참전때문에 클라라와 떨어지게 된다. 한국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갠트는 그녀
에게, “만일 내가 전사하면 다른 사람과 재혼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내 클라라는 단호하게 “노(No)”라고 답하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곤 “당신을 제외하고는 앞으로 다른
사람과 결혼할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1950년 12월 남편은 전장에서 100달러 지폐를 담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아내에게 보낸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
에겐 마지막이 된다.
갠트 중사는 군우리 전투에서 북한군에 포로로 잡혀 돌아오지 못했다. 그 후 그는 실종자(MIA)로 분류된다.
전쟁이 끝난 뒤 하와이에 본부를 둔 미 국방부의 ‘전쟁포로·실종자 합동조사본부’는 한국전 전사자 유해를 찾
기 위한 협상을 북한 측과 벌인다. 지루한 협상 끝에 마침내 갠트 중사를 비롯한 미군 유해를 발굴하는 데 성
공한다.
갠트 중사는 북한의 포로수용소에서 1951년 3월 27일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드디어 2013년 12월. 갠트 중사의 유해는 LA공항에 도착하게 된다. 두 사람이 헤어진지 63년만이다.
성조기에 싸인 유해 앞에서 클라라는 오열한다. 그동안 자신이 남편 앞에서 다짐한대로 끝까지 기다려 온 그
녀는 남편의 유해 앞에서 눈물을 훔치며, “남편이 돌아와 기쁘다. 이제 편히 눈을 감게 됐다”며 감격한다.
63년만에 유해로 돌아온 남편을 맞는 클라라 갠트
2014년 5월 26일.
미국의 '현충일'인 메모리얼데이를 맞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연설 도중 이 슬프고
아름다운 두 사람의 사랑의 러브스토리를 소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사연을 소개한 뒤 “클라라는 남편과 한 약속대로 63년을 기다려 왔다. 남편의 귀환을 기
다리며 끝까지 집을 지킨 클라라가 오늘 이 행사장에 와 있다”고 클라를 불러세웠다.
국립묘지에 모인 청중들은 30초가 넘는 긴 박수를 보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을 바친 수많은 전쟁영웅들에게서 미국의 힘을 느낀다”며 “그리고 전쟁 미망인들의 사랑에서도 그 힘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클라라 여사는 기자들에게 “나는 언제나 남편만을 사랑했고, 죽을 때까지도 그 사람의 부인”
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63년간의 긴 세월을 오로지 갠트 한 사람만 생각하며 지내왔고 또 남은 여생까지 그렇게 살겠다는 아름다운 여
인을 보면서 이런 노래가 생각난다.
우~
내 인생에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
그 나머지도 나의 것은 아니죠
그대를 그대를 그리워하며 살아야 하니까
그대를 만날 때면 이렇게 포근한데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사랑을 어쩌면 좋아요
내 인생에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
그 나머지도 나의 것은 아니죠
그대를 그대를 그리워하며 살아야 하니까
이 마음 다 바쳐서 좋아한 사람인데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사랑을 어쩌면 좋아요
내 인생에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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